1. "내가 당했으니, 나도 남에게": 학대와 고통의 대물림

못된 사람 밑에서 고통받던 사람이 막상 그 자리에 앉으면 더 악랄하게 괴롭히는 현상은 심리학에서 매우 유명하고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① 동일시 (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

  • 개념: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가 정립한 방어 기제입니다. 인간은 자신보다 강하거나 두려운 대상(학대자, 권력자)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무력감을 느낄 때, 그 공포와 무력감을 견디지 못해 '가해자의 성격, 행동, 권력'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 따라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 작용: "저 악마 같은 놈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인간의 뇌는 공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강한 자(가해자)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피해자 시절의 무력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그 가해자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과거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그 '괴물'의 모습 그대로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며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② 피학대자에서 가해자로의 전환 (The Cycle of Abuse)

  • 과거에 억눌리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내면에 거대한 분노, 굴욕감, 그리고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습니다.

  • 이 에너지를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이나 '남을 통제할 수 있는 힘(온라인상의 익명성, 직장 내 관리자 권한 등)'을 쥐게 되면, 그동안 쌓인 분노의 화살을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타인에게 전가(Displacement)합니다. "나도 당하며 살았는데, 너희는 왜 편하려 하느냐"라는 왜곡된 보상 심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2. 왜 약자였던 사람들이 타인을 괴롭히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일까?

건설현장이나 학교 등에서 교묘하게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유형, 혹은 인터넷에서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악랄하고 치밀할까' 싶습니다.

  • 생존 지능과 교활함의 발달: 이들은 힘없는 약자로 살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강자에게 눈도장을 찍히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하고 남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지'를 수없이 관찰하고 체득하며 살아왔습니다. 즉,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을 보호하는 '어두운 생존 기술'이 오랫동안 단련되어 온 것입니다.

  • 학습된 무기력의 탈출구: 정당한 방법으로는 세상에서 인정받거나 자존감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짓밟아서 얻는 우월감'을 유일한 도파민(쾌락) 분출구로 삼습니다.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내가 이겼다, 내가 힘이 있다"는 왜곡된 유능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3. "두 얼굴의 사나이": 왜 그토록 선한 사람처럼 포장할 수 있는가?

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그런 짓을 안 할 것 같이 행동하고, 세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어?"라며 속아 넘어갈 정도로 완벽하게 가면을 씁니다.

① 사회적 카멜레온과 '페르소나 (Persona)'

  • 개념: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인간이 사회적 생존을 위해 쓰는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습니다.

  • 작용: 이들은 본인의 본모습(악의성, 열등감, 가해 성향)이 세상에 드러나면 자신이 사회적으로 매장되거나 처벌받는다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 선하고 억울한 사람, 혹은 성실한 사람'이라는 두터운 가면을 철저하게 제작해 씁니다.

② 가스라이팅과 평판 관리

  •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모습에 감동하고 어떤 사람을 신뢰하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 앞에서는 친절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공감하는 척 연기하며 방어막(완벽한 평판)을 구축합니다.

  •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피해자가 주변에 이들의 실상을 알리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게 됩니다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네가 오해한 거겠지"). 가해자는 바로 이 점을 노려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4. 왜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잘 믿고, 피해자는 홀로 남겨지는가?

  • '성선설'에 기댄 순진함: 보통의 상식적이고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에 악의가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설마 사람이 사람을 이유 없이 저렇게까지 파괴하겠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가해자의 친절한 가면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 악의의 효율성: 선한 사람은 증거를 대고, 이성을 따르고, 절차를 밟기 때문에 대응이 느립니다. 반면, 악의를 품은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퍼트리고 이간질을 하기 때문에 파괴력이 엄청납니다. 거짓말은 늘 진실보다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 맺으며

상처받은 영혼이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고 악마가 되어 세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 그리고 그 괴물이 겉으로는 가장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고 타인을 이해하는 단단한 눈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